본문 바로가기

BxD

[백도] 특별한 연애 번외(+tmi)

 

 

 

 

 

 

 

 

경수는 요즘 골치가 아팠다.

 

 

 

 

"이사님."

"으응."

"저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아침잠이 별로 없어 알람 없이도 벌떡벌떡 잘 일어나는 경수와 달리, 백현은 아침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침이 되면 저를 품 안 가득 끌어안은 채 단잠을 자는 백현의 팔에서 벗어나는 게 일이 되었다. 이렇게 벗어나려고만 하면,

 

 

 

 

"더 자."

 

 

 

 

잠기운이 가시지 않아 반쯤 쉰 목소리로 웅얼거린 백현이 힘주어 경수를 당겼다. 폭신한 이불 속에 파묻혀 뜨끈해진 체온으로 귓바퀴에 쪽쪽 입술 도장을 찍고 어쩔 때는 뺨을 깨물기도 하니 혹시 잠을 핑계로 수작을 벌이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국이라도 남을까, 이에 부딪혀 아프기라도 할까. 입술로만 광대를 우물우물 깨무는 것에 질색을 하여 고개를 저으면 히히, 장난스런 웃음을 지은 백현이 경수의 목덜미에 코를 박은 채 앓는 소리를 냈다.

 

 

 

 

"왜 일찍 일어났어."

"일찍은요. 지금 11시인데요."

"으응, 새벽이네. 더 자."

 

 

 

 

백현은 경수와 함께 침대에서 보내는 아침을 좋아했다. 하릴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포근한 아침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면 졌다는 듯 한숨을 쉰 경수가 이내 백현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쓰다듬어주었기 때문이다. 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손길이 좋아 더 늑장을 부리는 것도 모르고 이사님은 아침잠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백현은 미소 띤 얼굴을 지우지 않은 채 다시 잠을 청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침이었다.

 

 

 

 

 

 

 

 

 

 

 

 

 

***

 

 

 

 

 

 

 

 

 

 

 

 

 

주말은 해가 중천을 지날 때까지 침대를 뒹굴었다. 포근한 이불에 파묻혀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고 있으면 그 어떤 힐링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결국 견디다 못한 경수가 도망칠 때까지 경수의 어깨에 뺨을 비비며 어리광을 부리던 백현은 배가 고프다는 경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리에는 영 젬병인 터라 부엌은 온전히 경수의 공간이었다. 프라이팬을 꺼내고, 냉장고를 열어 갖가지 재료를 챙기는 경수를 바라보던 백현은 부엌이 한눈에 보이는 아일랜드 식탁에 앉아 본격적으로 경수를 구경했다.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도와주겠다고 나섰었는데 양파 껍질을 벗겨달라는 말에 대체 어디까지 양파 껍질을 벗겨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백현이 주먹만 한 양파를 엄지만 한 크기가 될 때까지 벗겨내다가 경수에게 들켜 쫓겨났다. 그 뒤로 경수는 백현이 도와준다고 나서면 질색을 했고 제 잘못을 알았던 백현은 더 이상 빈말로라도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돕지 못하게 된 건 둘째 일이고. 백현은 계란을 푸는 경수의 허리를 끌어안고 뺨을 부볐다. 밥 안 먹을 거냐며 타박하는 경수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지만 무시했다. 경수의 손을 당겨 젓가락을 내려놓게 한 백현은 경수의 허리를 덥석 잡아 들어올렸다.

 

 

 

 

 

"이사님!!"

"가자, 경수야!"

 

 

 

 

 

놀란 경수가 발버둥을 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현은 달랑 들어 올린 경수의 몸을 끌어안으며 푹신한 침대로 몸을 던졌다.

 

 

 

 

"이사님, 배 안 고프세요?"

"사과 먹었잖아."

"전 배고픈데."

"이제 안 고플걸?"

 

 

 

 

 

헐렁한 티셔츠 속에 제 머리통을 집어넣은 백현이 판판한 가슴팍 곳곳에 입을 맞추자 간지러움을 참지 못한 경수가 비명을 질렀다. 백현은 빠져나가려 몸부림을 치는 경수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곳곳에 입을 맞췄다.

 

 

 

 

 

"진짜!"

"좋은데 어떡해."

 

 

 

 

잔뜩 늘어난 티셔츠 위로 불쑥 얼굴을 들이밀자 얼결에 티셔츠 하나를 나눠 입은 꼴이 됐다. 경수는 한숨을 쉬며 턱 끝에 닿는 백현의 이마를 꽁 찧었다.

 

 

 

 

"자꾸 이러면 저희 집 못 오게 할 거에요."

"그럼 나 울 거야."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는지. 경수는 재차 한숨을 쉬며 제 위를 차지하고 누운 백현의 등을 쓰다듬었다. 거대한 회사를 이끌어가는 백현은 언제나 바빴고 경수도 늦게까지 손님들을 맞았기 때문에 평일에는 퇴근한 백현이 경수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20여 분의 시간이 만남의 전부였다. 아쉽긴 해도 다음 날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기에 매일 집 앞까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백현은 그 짧은 시간이라도 경수의 손을 꼭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기 바빴다.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라 말하면서도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해 잡힌 손을 빼내는 경수가 곤혹을 느낄 정도였다. 주말에야 두 사람 모두 쉬는 덕에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그마저도 밀린 일을 처리해야 했던 백현이 울상을 지은 채 태블릿을 두드리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경수의 입장에선 회사를 이끌어가는 백현이 바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충분히 이해하고 넘긴다 할지라도 기껏 함께하는 주말마저 바쁘게 울리는 전화를 받고 올라온 서류들을 확인해야 했던 백현의 입장에선 달랐다. 돌아오는 여름 휴가만큼은 꼭 경수와 보내고 싶어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던 백현은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미팅 시간을 맞추기 위해 비행기를 세번이나 경유해서 유럽에 간 게 문제였는지, 그 후 쉴 틈 없이 바로 인도에서 바이어를 만난 뒤 중국에 있는 공장까지 돌아본 게 문제였는지. 제 몸 상태가 나쁘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백현은 그 와중에도 경수의 마감 시간에 맞춰 가게까지 찾아왔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온 것을 안 경수가 알아서 갈 수 있다며 백현을 만류했지만 연이은 출장으로 나흘 넘게 경수를 보지 못한 백현은 단 10분 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결국 백현의 차에 올라타긴 했는데 조수석에 앉자마자 느껴지는 심상찮은 열기에 절로 표정이 굳었다. 경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핸들을 돌리는 백현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혹시 실수로 히터를 틀었나, 아니면 러트가 온 건가 싶었는데 상기된 얼굴을 보자 열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의 아파트 앞에 차를 멈춘 백현이 보고 싶었다며 저를 돌아보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경수는 손을 뻗어 백현의 뺨을 쓸었다.

 

 

 

 

"어어...."

 

 

 

 

놀란 백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물리는 것에 남은 손마저 뻗어 양 뺨을 감싸 쥐자 안 그래도 열이 올랐던 백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

 

 

 

 

"경수야."

"지금 열나는 거 알아요? 몸이 이 지경인데 무슨 생각으로 오겠다고 한 거예요? 약도 안 먹었죠. 이사님 지금 엄청 뜨거워요.”

“경수야.”

“왜요.”

“너무 좋다.”

 

 

 

 

네가 내 걱정해주니까 너무 좋아.

말꼬리를 질질 늘어트리는 것이 정신이 반쯤 빠진 사람 같았다. 그러나 제 손에 뺨을 기댄 채 웅얼거리는 백현의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어서 그를 보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경수는 데인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뒀다. 누가 봐도 이상한 모습이었으나 열이 오른 백현은 경수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하고 멀어진 손만 흘깃거렸다.

 

 

 

 

“얼른 들어가.”

“집까지 어떻게 가시려고요.”

“김 비서 불러도 되고, 대리도 있고.”

“....”

“걱정하지 마. 좀 피곤해서 그런 거야. 내일 되면 멀쩡할 걸?”

 

 

 

 

저를 안심시키려는 듯 평소보다 더 밝게 미소를 지은 백현이 무릎 위에 올려진 손을 끌어 흔들었다.

 

 

 

 

“빨리 들어가. 보내기 싫어질 것 같아.”

“같이 올라가실래요?”

“어...?”

 

 

 

 

 

충동적으로 뱉은 말이었는데 놀란 얼굴을 한 백현을 보니 마음이 굳었다. 경수는 어설프게 손등을 덮은 백현의 손을 단단히 맞잡았다.

 

 

 

 

“같이 올라가요. 어차피 내일 주말이라 쉬시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혼자 있으면 더 아파요. 주말 동안만 같이 있어요.”

 

 

 

 

맞잡아준 손도, 저를 보는 경수의 눈도 믿기지 않다는 듯 백현이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경수는 백현이 대답할 때까지 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고개가 끄덕여진 건, 생각보다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

 

 

 

 

 

 

 

 

 

 

 

 

 

 

***

 

 

 

 

 

 

 

 

 

 

 

 

 

 

 

두 사람이 눕기에 적당한 침대를 혼자 차지한 백현은 이불을 입술까지 덮고도 눈을 감지 못했다. 쉬라고 데려온 건데 도리어 눈이 말똥해지는 것에 기가 막혀 얼른 자라고 타박하자 긴장이 돼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 돌아왔다. 경수는 시원한 물에 적신 수건을 백현의 이마 위에 올려놓으며 억지로 눈을 감겼다. 처음에는 잠들기 아쉽다고 뒤척이던 백현이 금세 잠에 빠져 쿨쿨댔다. 경수는 한숨을 쉬며 잠든 백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수건 아래로 보이는 뺨에 열꽃이 펴 엉망이었다. 이런 상태로 자신을 보러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왜 이렇게 바보같이 굴어요.”

 

 

 

 

당신을 사랑하던 나처럼. 모든 순간을 사랑에 바치던 나처럼, 왜 그렇게 어리석게 굴어.

답답함에 자꾸 한숨이 나왔다. 제가 아는 백현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저를 좋아한다 말하는 백현이 저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것에 다시 한숨을 쉰 경수는 결국 그 밤을 꼬박 새웠다. 잠들 수가 없는 밤이었다.

 

 

 

 

“경수야.”

 

 

 

 

새벽빛이 커튼을 흔들 때가 되어서야 겨우 눈이 감겼는데 어느새 아침이었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이긴 했지만 수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절로 하품이 나왔다. 경수는 마른 세수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혈색이 돌아온 백현이 등을 기대고 앉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요?”

“글쎄.”

“네?”

“모르겠어. 너 보니까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고.”

 

 

 

 

 

봉긋 솟은 뺨은 감추지 못한 다정이 맺혀 있었다. 여전히 익숙해질 수 없는 온기에 시선을 피한 경수는 아침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백현은 주말 내내 경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 뒤로는 금요일만 되면 자연스레 경수의 뒤를 쫓아 집에 들어섰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들어오지 말라고 막을 이유도 마땅치 않아 얼렁뚱땅 넘어간 것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 이제는 마치 제가 사는 집인 양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빈 샴푸 통을 바꿔놓는 것에 경수조차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배 많이 고파? 시리얼 줄까?”

“저희 집에 시리얼 없어요.”

“있어. 내가 저번에 사다 놨어.”

 

 

 

 

경수는 먹지도 않는 시리얼을 대체 언제 사다 놓은 건지. 게다가 집주인조차 모르게. 경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백현을 노려봤다.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는 얼굴은 최근 들어서야 겨우 보여준 것이라 백현은 그 매서운 눈초리마저 아까워 쩔쩔맸다.

 

 

 

 

“언제요?”

“저번 주에. 싫어? 과일이라도 갖다 줄까?”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백현이 허겁지겁 냉장고를 향해 달려갔다. 경수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얼굴을 묻었다. 백현은 제게 안달났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내뱉는 말 하나에 기다렸다는 듯 반응하는 것을 보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점점 커져갔다. 사람은 지치기 마련인데. 언젠가는 익숙해지고 무뎌지고, 끝내는 영원하리라 여겼던 마음조차 바래지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처럼 구는 백현이 싫었다. 저렇게 넘치도록 사랑해주다가, 미련 없이 떠날 것 같아서.

겨우 마음을 열 용기를 내면 나는 더 이상 마음이 남아있지 않다며 돌아설 것 같았다. 지나친 비약이라고 비난해도 과언이 아닌 걸 알지만 그랬다. 경수는 여전히.

여전히, 저보다 그를 더 사랑했다.

 

 

 

 

 

 

 

 

 

 

 

 

 

***

 

 

 

 

 

 

 

 

 

 

 

 

 

 

벌써 80주년을 맞이한 백현의 회사는 이번 해에도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경수는 자신이 그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무리 지난날 대외적으로 백현의 연인 행세를 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힌 관계였기에 사람들 앞에 대놓고 나선 적은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게 함께 갈 것을 얘기하는 백현이나 그의 어머니 때문에 경수는 거절할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얼떨떨하게 구는 사이 파티는 열렸고 백현이 제 손으로 직접 고르고 확인한 옷은 경수의 몸을 예쁘게 감싸 빛냈다. 아무리 제스스로 떳떳하다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비춰질 제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알기에 경수는 이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백현 또한 그런 경수의 마음을 알았으나 그렇다고 경수를 끌어안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히려 보여줘야 했다. 제 마음이 온전히 경수의 것이 된 이상 경수는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든, 무엇이든 경수를 함부로 대한다면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했다. 경수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경수의 옆에 선 백현은 오로지 그것을 목적으로 이 곳에 왔다. 그러나 그런 백현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경수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위에서 느껴지는 시선 때문이겠지. 백현은 간절한 마음으로 경수의 어깨를 쓸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경수가 자신을 밀치고 나간다고 해도 백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경수가 백현의 옆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경수의 자비로 가능한 일이었다.

 

 

 

 

 

“회장님, 안쪽에 유 회장님이 잠시 보자고 하시는데요.”

“할 말 있으면 알아서 오는 게 낫지 않나.”

“다녀오세요.”

“경수야.”

“저쪽에 있을게요.”

 

 

 

 

 

백현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경수는 굳이 말을 무르지 않았다. 백현과 같이 있을수록 시선이 더 몰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 차라리 백현을 보내고 구석에서 제게 쏠린 관심을 피해 볼 생각이었다. 마음에 걸리긴 해도 경수의 말을 거부할 권리를 가지지 않은 백현은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경수는 백현이 걸음을 떼자마자 사람이 드문 쪽으로 향했다. 백현의 지시를 받은 듯 경수의 뒤를 따른 김 비서가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경수를 지키듯 섰다.

 

 

 

 

 

“비서님.”

“예.”

“저 물 한 잔만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사람들이 주로 모인 자리에서 슬쩍 비켜서자 겨우 숨통이 트였다. 주변 시선이 덜해진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 그제야 긴장이 풀린 경수는 연회장 한켠에 놓인 물병을 눈짓했다. 사실은 아까부터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워낙에 저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져 물 한 잔 손에 쥐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긴장한 탓인지 목마름을 느낄 수도 없었고.

기꺼이 경수의 부탁을 수락한 비서가 물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경수는 버릇처럼 백현을 찾아 눈을 굴렸다. 마음은 형체가 없어 새어 나오는 것을 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손에 쥘 수도 없는 것을 제 생각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경수씨 맞죠?”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뚱한 얼굴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백현의 얼굴을 겨우 발견한 찰나, 경수는 저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놀라 어깨를 움칠했다. 제각기 샴페인 잔을 손에 쥔 오메가 셋이 미소를 띤 채 경수를 보고 있었다. 경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자신을 망신주기 위해 다가왔다는 것을 알았다. 저를 보는 눈빛도 그렇고, 인사도 없이 자신을 훑어보는 행동까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둘러댈 핑계도, 자리도 없었다. 결국 경수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시선을 돌려 백현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저는 변 이사님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사람이 참 대담하고 과감하단 말이야. 그렇지 않아요?”

 

 

 

 

 

경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 공식적인 자리에 불륜 관계로 유명했던 경수를 데려왔으니 사람들이 비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경아와의 일은 워낙에 내밀한 일이었고 밝혀진다고 해도 백현에게 좋을 게 없는 일이었기에 유야무야 넘어갔다. 경수는 그게 딱히 억울하거나 화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례하게 구는 이들을 보면 속이 상했다. 저보다는 백현에게 쏠리고 말 비난이었다. 간신히 찾아낸 흠 하나를 물고 늘어지며 집요하게 파고들 이들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이런 자리에 경수를 데려온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을 물어뜯으라고 목줄기를 내어준 꼴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경수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남자는 옆에 선 여자와 맞장구를 치며 신나게 떠들었다. 반은커녕 한 마디조차 주워듣지 않고 있는 경수를 모른 채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니 우습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경수는 찌푸린 얼굴을 숨기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아쉽게도 잠깐 사이에 백현은 사라지고 없었다. 찾는 이가 없으니 저를 도와줄 이라도 찾아야 했다. 경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김 비서를 찾았다.

 

 

 

 

“경아씨는 요새 뭐하신데? 경수씨 혹시 알아요?”

 

 

 

 

 

그러나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들린 순간 경수는 저도 모르게 흔들렸다. 경아의 이름은, 그의 존재는 경수에게 여전히 뾰족한 바늘과 같았다. 애를 써도 그 날카로움을 피할 수 없어서 마주하는 순간 반드시 상처 입게 되는 매섭고 두려운 것.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었지만 이미 동요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런 경수를 눈치챈 이들이 재빠르게 경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자 듣고싶지 않아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백현이 얼마나 애틋하게 그를 사랑했는지, 그는 얼마나 커다란 애정을 받았는지. 타인의 시선에서 비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느껴질 정도라면 그 애정을 온전히 제 것으로 삼았던 경아의 입장에선 어땠을까. 경수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런 애정을 받은 주제에 백현을 아프게 한 것도 싫었고 그런 애정을 주었으면서 이제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백현도 미웠다. 마구잡이로 뒤섞인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속까지 어지러웠다. 경수는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경수야.”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땅이 꺼져서, 이 아래로 내가 떨어졌으면 좋겠어.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단 생각에 숨이 막혀올 무렵 경수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싼 이가 달래듯 경수를 불렀다. 경수는 제게 다가온 백현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반질거리는 구두코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 안 좋아?”

“....”

“화났어? 응? 나 좀 봐줘, 경수야.”

 

 

 

 

경수야. 부르는 목소리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들어도 애원하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에 앞에 서있던 남자가 입을 가렸다. 경수는 겨우 고개를 들어 백현을 바라봤다. 어느새 주위가 고요했다. 아닌 척하면서도 모두가 백현과 경수를 보고 있었다. 경수는 기다렸다는 듯 저와 눈을 맞추는 백현을 보며 백현이 자신을 데려온 진짜 이유를 눈치챘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당신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좋을 리가 없잖아. 당신이 이러면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겠어. 수천 가지의 말이 혀끝에 맴돌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더 조심스러웠다. 뭔가를 말할 듯 하던 경수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벙긋거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경수야. 뭐든 해도 돼.”

“....”

“그러라고 마련한 자리야. 네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 무슨 존재가 될 건지 보여주기 위한 자리야.”

“이사님.”

“신경 쓸 거 없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뺨에 와닿았다. 둥근 엄지가 뺨을 쓰는 것에 절로 눈을 감았다 뜬 경수가 백현을 올려다보자 백현은 기다렸다는 듯 웃어 보였다.

 

 

 

 

“너는 그냥 약간의 자비만 내리면 돼.”

 

 

 

 

 

 

 

 

 

 

 

 

 

***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경수는 문득 돌아본 시간들이 쌓이고 쌓인 것이 놀라웠다. 언제 백현과 이만큼이 되었지. 새삼스럽기도 했다. 저를 볼 때면 변함없이 웃어 보이는 백현이 기꺼웠지만 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저의 두려움은 사랑이었다. 경수는 백현을 사랑하기에 백현이 두려웠고 그의 애정을 불신했다. 자신만큼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보다 덜 사랑하고, 나보다 짧게 사랑할 것 같아. 믿지 못하는 사랑은 은연중에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지만 애초에 백현이 자초한 일이었다. 백현은 경수를 원망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제 몫의 형벌을 받는 사람처럼 묵묵히 상처를 끌어안고 경수가 보지 못하게 감추었다. 경수는 그런 백현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아는 체 해봐야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경수야.”

 

 

 

 

그런데 그게, 오늘따라 왜 그렇게 후회가 되는지.

백현이 평소답지 않다는 건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연신 제 표정을 살피며 무언가를 재고, 생각했다. 때때로 말을 할 듯 벌려진 입술이 결국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것을 볼 때면 제 입술마저 바짝 말랐다. 저나 백현에게 좋은 일이라면 저렇게 망설일 리가 없으니 이것은 분명 좋지 못한 징조였다. 경수는 허벅지 위에 늘어놓은 손을 맞잡았다. 불안감 때문인지 손끝이 조금 떨려왔다. 최대한 담담하고 싶었다. 백현이 어떤 말을 꺼내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경수는 다시 한번 입술을 축이는 백현을 보며 저를 달랬다. 백현이 뭐라고 말해도 절대 울지 말자. 이별을 직감한 마음이 벌써부터 엉망으로 난도질 당했으나 애써 등 뒤로 감췄다.

이 정도면 오래되었지. 이 정도면 충분히 나를 사랑했지. 어떻게든 스스로를 달래고 이해시키려 애썼다. 매번 상처만 주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 그러게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어?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을 믿어주지. 왜 단 한 번도 쉽게 사랑하질 못해.

끝내 향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라 더 많은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손등 위에 손자국이 생길 만큼 힘을 주자 손이 덜덜 떨려왔다. 거봐. 내가 뭐랬어. 당신보다 내가 더 사랑한다고 했잖아. 당신보다 내가 더, 사랑할 거라고 했잖아. 치미는 원망은 백현을 향하면서도 저를 향했다. 백현이 밉고 제가 미웠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많이 고민했어.”

 

 

 

 

싫다. 듣고 싶지 않아.

 

 

 

 

“미안해. 내가 너무 염치가 없다. 그런데,”

“알겠어요.”

“응?”

“알겠다고요.”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았다. 백현의 입에서 나올 이별이라는 말은 저를 죽일 것이었다. 목을 조이고 찌르는 것이 아니라 저를 산산이 부숴 아무렇게나 짓밟을 것이었다. 경수는 차라리 먼저 도망가는 것을 택했다.

 

 

 

 

“...어, 그래?”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백현이 자세를 바로 했다. 경수는 애써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있는 물건은 알아서 버릴게요. 그 외엔 신경 쓸 거 없으니까.”

“물건을 버린다고? 왜?”

“가져가시려고요?”

 

 

 

 

그냥 버리면 안 돼? 아니. 그냥 나한테 좀 남겨주면 안 돼? 

원망스러운 마음에 절로 말이 뾰족하게 나왔다. 날이 선 반응에 당황한 듯 표정을 굳힌 백현이 한 박자 늦게 경수를 불렀다.

 

 

 

 

“경수야. 너랑 내가 좀 다른 얘길 하고 있나 보다. 그런 얘기가 아니야.”

“알아요, 하시려는 말. 애초에 각오했던 일이에요.”

“경수야.”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아니라고. 착각일 거라고 했잖아요.”

 

 

 

 

끝내 말꼬리가 허물어졌다. 그때 말을 듣지 않은 백현을 원망했다. 두 번이나 제 마음을 진창으로 처박는 그의 마음을 저주했다.

 

 

 

 

“치사하다고, 믿기지 않는다고. 내가-”

 

 

 

 

막는 것도 참는 것도 지쳤다. 경수는 눈으로 쏟아내리는 비난을 감추지 않았다. 입 밖으로 쏟아내는 설움은 연약하기 그지없어 더 서러웠다. 날이라도 섰으면 좋을걸. 당신을 조금이라도 상처입힌다면 좋을걸. 엉망일 게 뻔한 제 얼굴이 싫었다. 여전히 그로 인해 상처받는 자신이, 여전히 그에게 연약한 자신의 마음이.

 

 

 

 

“경수야.”

 

 

 

 

경수는 결국 얼굴을 묻었다. 손 안 가득 얼굴을 묻고, 울음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감췄다. 마지막에 그에게 기억될 얼굴이 이런 모습일 게 싫었다. 경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조차 끔찍하게 느껴졌다.

 

 

 

 

“경수야.”

 

 

 

 

백현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제 앞에 다가와 선 기척이 느껴지자 경수는 아예 고개를 숙여 그를 피했다.

 

 

 

 

“왜 단 한번도 지키질 않아요.”

“경수야.”

“왜 나하고 한 약속은 지켜주질 않아.”

 

 

 

 

그 사람과의 약속은 죽어도 지켰다며. 그 무엇보다 1순위로 삼았다며. 그런데 나한테는 왜 이래. 왜 나하고 한 약속은 그 무엇도 지키질 않아. 왜 나를 이렇게 별거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치미는 원망과 설움은 말보다 울음으로 먼저 쏟아졌다. 말하고 싶은데, 당신이 이렇게 밉고 이렇게 원망스럽다고 말하고 싶은데. 멍청한 자신은 그조차 제대로 해내질 못했다. 경수는 아예 소리를 내서 엉엉 울었다.

 

 

 

 

“경수야. 나 좀 봐봐. 응? 경수야.”

“싫어요.”

“경수야, 제발.”

 

 

 

 

더 이상은 힘들었다. 그 무엇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경수는 이제야 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

 

 

 

 

“경수야.”

“....”

“경수야.”

 

 

 

 

있는 힘껏 얼굴을 가린 손을 부드럽게 잡아 쥔 백현이 재차 경수를 불렀다. 아, 우습기 짝이 없지. 이 꼴을 하고도 설레다니.

 

 

 

 

“제발 나 좀 봐줘.”

 

 

 

 

몇 번째인지 모를 백현의 말에 결국 고개를 들었다. 경수는 흠뻑 젖은 뺨을 감추지 않은 채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래, 차라리 그가 똑바로 봤으면 했다. 당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가 얼마나 아프고 초라한지. 당신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러나 고개를 든 순간, 매섭게 치뜬 눈으로 백현을 노려보려던 경수의 계획은 힘없이 스러졌다.

 

 

 

 

“경수야.”

“....”

“염치없는 거 알지만, 이런 내가 한심하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부탁할게.”

 

 

 

 

백현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제 죄를 고하고 용서를 구하는 독실한 신자처럼, 미천한 종처럼.

 

 

 

 

“기회를 줘.”

 

 

 

 

감히 제게 손을 뻗지도 못한 그의 손에는 낯설고도 익숙한 것이 들려있었다.

 

 

 

 

“내 평생을 너한테 바치게 해줘.”

“....”

“경수야.”

 

 

 

 

저만큼이나 엉망인 백현의 얼굴이 그제야 보였다. 눈물길이 뚜렷한 뺨을 씰룩이며 백현은 손에 쥔 반지를 내밀었다.

 

 

 

 

“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덜덜 떨리는 손끝에 걸린 반지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경수는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제게 내밀어진 반지를 내려다봤다. 왈칵 울음이 터진 백현이 저만큼이나 엉망인 얼굴로 울먹거렸다. 누가 본다면 수근거릴 게 뻔한 꼴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경수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제게 사랑을 고하는 남자를 내려다봤다. 허공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반지를 보자,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경수는 입을 벌려 좀 더 크게 숨을 쉬었다.

진짜구나. 당신, 정말 날 사랑하는구나.

늪인줄 알고 내딛었던 걸음이 바다에 빠졌다. 경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가렸다.

드디어 백현의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특별한 일상 完

 

 

 

 

 

 

 

 

 

 

 

 

 

 

 

 

 

 

 

 

 

 

 

 

 

 

 

 

 

 

 

 

 

 

 

 

 

 

+)BONUS

 

 

 

 

일상 속 일상

 

 

 

 

여직 잠에 취한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눈조차 뜨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백현은 재빠르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으응-”

“좀 더 잘까? 응? 경수 좀만 더 잘까?”

 

 

 

 

채근하는 목소리는 달짝지근한 것이 듬뿍 묻어 끈적했다. 경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목을 움츠렸다. 지난밤 지독하게 자신을 괴롭히던 목소리가 생각난 탓이었다. 다정한 체하면서 달이 길을 떠나고 해가 창문 곁을 지날 때까지 저를 놔주지 않은 백현이다. 섣불리 대답이라도 했다가 또 어제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봐 겁이 났다. 경수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백현이 고개를 숙여 눈썹 끝에 입을 맞췄다.

 

 

 

 

“자자.”

 

 

 

 

품에 안고 도닥거리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아기를 재우듯 내려앉는 손이 닿을 때마다 제가 가진 애정을 흩뿌렸다. 행복하다는 거, 충만하다는 거 이렇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경수는 눈을 감은 채 제 위에 쌓이는 다정에 파묻혔다.

 

 

 

 

“일어났어?”

 

 

 

 

다시 눈을 뜬 것은 해가 중천을 지나 다시 돌아갈 때쯤이었다. 이미 오후가 되어버린 시간에 놀란 것도 잠시, 방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저를 반긴 백현이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배고프지? 밥 먹자.”

“요리했어?”

“아니. 알잖아.”

 

 

 

 

장난스레 짓는 미소가 나이답지 않게 짓궂었다. 경수는 못 말린다는 듯 혀를 차곤 백현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포장해온 것이 역력한 음식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법 예쁜 그릇에 소담히 담긴 것을 보니 집에서 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수프나 싱싱한 샐러드, 배를 채우기 적당한 필라프를 보니 절로 입맛이 돌았다. 경수는 부드러운 수프부터 들이켰다. 적당히 묽은 수프는 경수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나는 경수 입술이 참 좋아.”

“밥이나 먹어.”

“왜? 좋으니까 좋다고 하는 건데.”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저를 관찰하는 백현의 시선에 담긴 뜻을 모를 리 없었다. 경수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수저를 움직였다. 잘게 자른 등심을 매콤한 양념에 볶아 만든 필라프는 경수가 이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먹던 것이었다. 수저 가득 고슬한 밥과 고기를 퍼 입에 넣자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현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뭐만 먹으면 저 표정을 짓는다. 경수는 저를 보느라 수저 한번 들지 않은 백현이 신경 쓰여 손을 뻗었다. 양념이 밴 붉은 밥알이 가득 담긴 수저가 얼굴 가까이 다가가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물렸던 백현이 냉큼 입을 벌렸다. 냠, 일부러 소리를 내며 받아먹으니 잠이 덜 깨 뚱한 얼굴을 하고 있던 경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경수 웃었다.”

“빨리 먹어. 배 안 고파?”

“덜면서 좀 먹었어. 얼른 먹어. 마실 것 좀 갖다 줄까?”

“나 진짜 힘들어.”

“왜. 허리 아파? 마사지해줄까?”

“그게 아니라.”

 

 

 

 

경수는 의미 없이 놀리던 수저를 내려놓고 백현을 바라봤다. 의아한 듯 저를 보는 눈과 곧은 콧날, 말간 뺨 아래 보이는 말랑한 입술이 시선을 끌었다. 경수는 살짝 벌어진 입술을 대놓고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얇은 입술 옆에 매달린 얄미운 밥풀 하나를.

뭐가 붙은지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현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경수는 손을 뻗어 입술 옆에 붙은 밥풀을 떼어냈다.

 

 

 

 

“뽀뽀 안 해줄 거니까 이런 거 붙이고 있지 마.”

 

 

 

 

제게만 어리게 구는 백현이 자꾸 귀여워 보여서 큰일이었다. 이러다 숨만 쉬어도 귀엽다고 하겠어. 서른 넘은 남자를 두고 할 생각은 아니다. 경수는 제 스스로를 중증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기다렸다는 듯 뽀뽀? 하면서 달려들 백현이 조용했다. 경수는 그 의외의 침묵을 뒤늦게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

 

 

 

 

 

눈앞에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백현이 귀까지 물들인 채 저를 보고 있었다. 경수는 생각도 하지 못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진짜 경수야. 너무하잖아.”

 

 

 

 

한 손에 얼굴을 묻은 채 끙끙거리는 백현을 보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나 설레서 죽으라고 그러는 거야, 진짜. 너무해.”

“밥 먹어.”

“맨날 밥이나 먹으라고 하고, 뽀뽀도 안 해주고.”

“뽀뽀에서 안 끝나니까 안 해주는 거지. 한 번이라도 뽀뽀만 하고 끝낸 적 있어?”

 

 

 

 

 

울컥하는 마음에 백현을 노려보자 깨갱한 얼굴로 울상을 지은 백현이 입술을 비죽였다.

 

 

 

 

“입술이 그렇게 예쁜데 어떡해.”

 

 

 

 

은근히 저를 흔들려는 말은 가볍게 넘겼다. 경수는 한 수저 가득 뜬 밥을 재차 백현의 입에 밀어 넣었다. 불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 경수가 내미는 건 절대 거절하지 않는 백현이 냉큼 그를 받아먹었다.

 

 

 

 

 

“다 먹으면 해줄게.”

“어?”

“얼른 먹어.”

“...경수야, 나 다 먹은 것 같아.”

“두 숟갈 먹어놓고 무슨 소리야. 얼른 먹어.”

“아니, 나 진짜로-”

 

 

 

 

 

눈을 부릅뜬 채 배가 부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백현의 말을 흘려들으며 웃었다. 이제는 눈만 봐도 알 수 있는 그의 모든 말이 저를 끌어안았다. 눈으로, 목소리로, 손길로 제게 사랑을 속삭이는 백현의 모든 흔적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단순히 저를 부르는 한마디로 사랑을 녹여내는 이다. 저를 끝없는 절망으로 밀어넣고 눈부신 행복으로 당겼다. 경수는 제 모든 것을 손에 쥔 주제에 제 목줄을 잡아달라 애원한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반쯤 장난어린 얼굴로 저를 설득하기 위해 얼굴을 들이미는 백현의 뺨을 끌어당긴 경수는 그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랑해.”

“...내가 더. 경수야, 내가 더 사랑해.”

 

 

 

 

 

제 마음을 고할 때면 언제나 눈물을 글썽인다. 내가 더 사랑한다고, 내가 더 너를 아껴줄 거라고 말하는 백현의 말은 언제나 저를 기쁘게 했지만 경수는 자신이 더 백현을 사랑한다고 확신했다.

 

 

 

 

 

“응.”

 

 

 

 

 

바닷속에 빠진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님을 모르고. 제가 몸을 던진 곳이 바다라는 것도 모르고. 속에서 해일이 일어난 바다는 잔잔한 파도로 눈속임을 하며 경수를 끌어당겼다. 온 몸을 던져도 괜찮다는 듯, 발 끝을 적시는 애정이 경수를 간질였다.

우습게도 평범한 하루였다.

 

 

 

 

 

 

 

 

 

 

 

 

 

 

 

 

 

 

 

 

 

 

 

 

 

 

-

 

 

 

 

 

 

이렇게 특별한 연애가 진짜 끝이 났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특별한 연애 속 백도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백도온 나눔을 진행하면서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너무 많은 마음을 받아서 행복했어요

다음 백도온에는 꼭 부스를 낼 수 있도록...8ㅅ8 최선을 다하겠슴니다

말씀하신 연정 소장본도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재미로 읽는 TMI도 준비했으니 즐겁게 읽어주세요^ㅅ^

 

 

 

 

 

 

 

 

 

 

 

 

 

 

특별한 연애 속 TMI

 

 

 

  • 처음 백현이랑 경수가 만났을 때 대리오메가를 구하는 전단지 앞에서 1시간 가까이 서있던 경수를 백현이는 처음부터 계속 보고 있었음

 

 

 

  • 두 사람은 가짜 연인을 연기하면서 일주일에 못해도 한번 이상은 꼭 얼굴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냈음 한강에서 같이 라면을 먹고 자동차극장도 가고 맥주를 마시거나 레스토랑에 가는 등 데이트를 많이 함

 

 

 

  • 中편에서 백현이 사오던 샌드위치는 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사온 게 아니라 제가 종종 가는 호텔 레스토랑에 특별히 연락해서 포장해 온 샌드위치

 

 

 

  • 경아는 평소에 백현을 백현씨라고 부릅니다. 下편에서 경수를 찾아왔을 때 백현이라고 부른 건, 경수 들으라고 일부러 그런 거.

 

 

 

  • 中편에서 경수와 백현이 재회한 뒤 경아와 백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한 건 경아의 계략. 윤비서를 통해 경수와 재회한 걸 알게 된 경아가 일부러 그 백화점을 찾은 것...! 윤비서는 예전부터 경아를 좋아했음 그래서 경아가 경수 경계하고 상처주는 거 알면서도 도왔음

 

 

 

  • 경아가 경수를 경계한 건 처음으로 저와의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경수를 간호하러 갔던 그 날부터. 백현이는 경수가 아픈 걸 눈치채고 집에 가려던 차를 돌려 경수를 보러 갔음 어쩌면 그게 두 사람의 시작.

 

 

 

  • 백현이는 사실 후회를 거의 안함. 저번에 후회 많이 안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말 그대로입니당. 백현이는 똑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거에요. 그렇게 만나게 된 경수를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백현이가 후회한 건 크게 두가지인데 경수를 좋아하는 걸 깨달았을 때랑 경수한테 청혼했을 때.

 

 

 

  • 두 사람은 결혼하고 2년 뒤 애도 낳습니다 

 

  • 딸 하나 아들 하나. 첫째가 딸입니다

 

 

  • 경수가 임신했을 때 그 소식을 들은 백현이는 울었음

 

 

 

  • 첫째 임신 당시 경수가 먹고 싶다는 설렁탕을 공수하기 위해 백현이는 헬기를 띄었음

 

 

 

  • 둘째 임신 당시 입덧은 백현이가 했음

 

 

 

  • 80주년 행사에서 백현이가 경수를 동행한 건 경수가 제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공언하기 위한 의도였음. 행사 이후 경수에게 선물을 가장한 뇌물이 비오듯 쏟아져 경수가 한동안 난감해했다고.

 

 

 

  • 백현이가 청혼을 위해 준비한 반지는 백현이가 직접 블루 다이아몬드를 구매해서 커스텀을 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반지.

 

 

 

  • 경수는 식당을 계속함. 백현이는 점심 때 경수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저녁에는 경수를 데리고 집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음.

 

 

 

  • 백현의 어머니는 아주 건강해지셨고 백현이보다 경수랑 시간 보내는 걸 더 좋아해서 백현이가 질투함. 물론 경수말고 어머니를.

 

 

 

  • 딸랑구는 경수 닮고 아들방구는 백현 닮았는데 거의 거푸집 수준. 딸랑구 최애는 백현이고 아들방구 최애는 경수라 남매 사이가 아주 좋음. 아들방구 병원에서 처음 집으로 왔을 때 곤히 잠든 얼굴을 본 딸랑구는 끌어안고 있던 인형을 떨궜음

 

 

 

  • 경수는 셋째 갖고 싶은데 백현이가 반대중. 임신 과정이나 육아나 모두 제 손을 거치고 싶어해서 경수가 고생하는 걸 본 백현이 더 이상 고생시킬 수 없다며 결사반대를 선언함.

 

 

 

  • 경수가 홀로서기를 시작했을 때, 장례식장에서 봤던 경수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던 백현은 경수의 어머니가 계신 납골당에 혼자 찾아간 적이 있음

 

 

 

  • 백현과 경수가 가짜 연인 행세를 하던 당시 백현의 어머니가 경수가 일하던 회사에 두 사람의 관계를 소문낸 적이 있는데 백현이는 그때 어머니를 찾아가 제 사람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음

 

 

 

  • 아침밥은 백현이 차림. 직접 요리를 하는 건 아니고 도우미분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국을 데우거나 상을 차리는 정도.

 

 

 

  • 잠들기 전 백현은 항상 경수의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춘 뒤 사랑한다고 말함

 

 

 

  • 경수는 결혼하고도 1년동안 백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음

 

 

 

  • 경수가 다시 백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새벽, 문득 잠에서 깬 경수를 느낀 백현이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뒤척이며 잠결에 중얼거린 행복해- 라는 말을 듣고. 아침을 차리는 백현한테 말했음

 

 

  • 물론 그 말을 들은 백현은 또 울었음

 

 

 

 

 

 

 

 

 

 

 

 

 

 

 

 

 

 

 

 

 

 

 

 

 

 

'Bx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도] ANTINOMY  (0) 2020.04.27
[백도] play, boy  (0) 2020.04.27
[백도] 특별한 연애 下  (0) 2020.04.27
[백도] 특별한 연애 中  (0) 2020.04.27
[백도] 특별한 연애  (0) 202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