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썰 백업 입니다.
선배들이 죽어도 하지 말라는 CC를 기어코 김밍섟이랑 김쥰멵이 했더랬지.
물론 충고를 반만 받아들여서 비밀 CC.
아무도 몰래 허리 한번 쓰다듬고 손 한번 스치면서 애정 쏟아붓던 게 벌써 3년.
흔하게 찾아온다는 권태기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대외적으로는 솔로인 밍섟에게 대놓고 들이대는 후배를 보면서도 쥰멵은 아무 말 못했다. 원래라면 칼같이 선 긋고 밀어냈을 애가 미는 듯 하면서 챙기고 있으니 주변에서는 둘이 잘 어울린다는둥 우리 과 1호 커플이라는둥 두 사람을 몰아간다.
쥰멵은 어정쩡하게 구는 밍섟을 보며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해서 혼자 속끓는다.
밍섟도 쥰멵도 말 못 했지만 사실 두 사람 다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인데 밍섟은 회사 승계를 위한 테스트로 집안의 지원 없이 대학 생활을 하는 중이었고 쥰멵은 그냥 조용히 대학 생활을 하고 싶어서 숨겼다.
말만 안 했지, 씀씀이까지 감추진 않아서 대학 내 사람들은 쥰멵이 좀 부유한 집에서 자랐구나, 정도로만 알았고.
밍섟은 대학 졸업 후 자리 잡을 때까지는 대기업 자제고 뭐고 별 소용 없는 거 알아서 자리 잡으면 쥰멵에게 말하고 프로포즈할 계획까지 다 짜놨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후배가 K그룹 사람이라 재작년 산하 계열사 브랜드 론칭 자리에서 밍섟을 봤단다.
비밀 지켜줄까요? 하고 물고 늘어지는데 도통 방법이 없더라.
그걸 빌미로 밥 사달라, 데려다달라, 영화 보자 하는데 끌려다녔다.
마음같아선 배째라 하고 싶은데 사실이 밝혀진 뒤 배신감 느낄 쥰멵은 물론이거니와 회사 승계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지금 정체가 알려졌다간 졸업도 못하고 해외로 나가야 할지 몰랐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오해는 점점 쌓여갔고 거기에 때마침 후배로 쥰멵의 사촌이 들어오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밍섟은 저 때문에 속상할 쥰멵을 알아서 몇번이고 말했다. 내가 지금 사정이 있어서 설명하진 못하지만 절대 널 상처줄 일은 없다고. 너를 아프게 할 일도 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기다려달라고.
애걸과도 같은 부탁이었지만 쥰멵은 대답하지 않았다.
쥰멵은 이미 상처입은 채였다.
서러운 마음을 토해낼 길이 없으니 자연스레 저와 가까운 이를 찾았다. 쥰멵은 제 사촌인 호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 제정신으로 집에 돌아간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뭐?
-김쥰멵 선배요. 호랑 사귄다던데.
-누가 그래.
-애들이요. 봤다던데, 둘이 어깨동무하고 같이 집에 가는 거.
-술 취한 애 재워준 거겠지.
-에이. 선배는 과 생활 잘 안 해서 모르겠지만 그 둘 매일 붙어다녀요. 저번에는 서로 옷도 바꿔입고 왔던데?
밍섟은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헛소리.
쥰멵은 그럴 이가 아니었다. 밍섟은 그의 말을 흘려넘겼다.
쥰멵과의 사이를 눈치채기라도 한듯 끈질기게 쥰멵에 관한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게 거부감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골적인 후배의 말이나 플러팅에 참다 못한 밍섟은 결국 아버지에게 딜을 제안하고 후배를 깔끔하게 쳐낸다.
진작에 이럴 걸, 저 한 몸 편해보겠다고. 쥰멵과 좀 더 같이 있겠다고 고집부린 게 한스럽던 밍섟은 그 길로 쥰멵의 자취방을 찾아가는데 건물 앞에서 인사불성이 된 호를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는 쥰멵과 마주친다.
쥰멵은 안 그래도 상한 마음에 술까지 들어갔으니 밍섟이 좋게 보일 리 없었고 밍섟은 과 사람들이 수근거리던 이야기가 자꾸 귓가를 맴돌아 착잡했다.
그래도 아니지, 그런 소문 믿는 건 아니지 싶어서 안 무거워? 내가 부축할까? 물어보는데 기껏 내민 손을 차갑게 내친 쥰멵이 됐어, 우리가 알아서 가 라고 해버린다.
근데 그 '우리' 라는 말에 맥이 탁 풀리더라. 너무나 쉽게 내뱉는 너의 우리라는 말이, 거기에 속하지 않은 내가 화가 났다.
밍섟은 그래서 저를 지나치려는 쥰멵을 붙잡았다.
-가지마.
-놔.
-너 지금 가면, 나 다시는 너 안 봐.
답지 않은 행동이란 건 알았다. 옳지 못한 선택이라는 것도, 역시 알았다. 그러나 해야 했다. 네 마음에 아직 내가 있다고, 아직 너한텐 내가 우선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쥰멵은 여유가 없었다. 밍섟은 몰랐겠지만 낮에 후배를 만났다. 밍섟에 대해 얼마나 아냐며, 저는 선배님과 달리 밍섟 선배한테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건방진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었다.
얼결에 제 배경에 대해 숨기는 꼴이 되다보니 덩달아 밍섟에 대해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본가는 어디인지, 가족들은 어떤지, 너는 부모님 중 누구를 닮았는지 하는 작은 질문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자신만만한 후배의 태도에 할 말이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 반박할 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뒤늦게 회의감이 들더라.
그 질문 하나 못 하고 뭐했지. 나도, 너도 왜 서로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지 않았지.
그냥 서로가 좋아서, 서로만으로 충분해서 그랬던 건데 그 순간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도 몰라요, 라는 투의 후배의 태도에 겨를이 없었다.
몰릴 대로 몰린 상황에서 밍섟의 말은 쥰멵을 더 구석으로 내몰았다. 다시는 안 본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올 말이던가?
밍섟이 저만큼이나 구석에 몰렸다는 건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볼 수 있는 건 오직 저 자신 하나였으니.
쥰면은 차갑게 밍섟을 지나쳤다.
마음대로 해.
그게 끝이었다.
그 후론 서로의 뒷이야기를 몰랐다.
주민 신고가 들어온 새벽까지 밍섟이 그 앞을 서성였다는 것도, 집에 들어가자마자 오바이트를 한 호 때문에 정신없이 치우다 쓰러지듯 잠들었던 쥰멵이 어둑한 새벽녘, 다급하게 뛰어내려와 주변을 한참이나 돌아다녔다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어떡할 건데. 너 나랑 진짜 결혼이라도 하게?
여물지 못하고 잘라내야 했던 사랑은 그대로 말랐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고, 얼마나 자라 성숙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멈춰선 사랑은 그 나이 그 서툶을 그대로 간직했다. 애처럼 퉁명스레 구는 꼴이 부끄럽지도 않았다.
쥰멵은 매섭게 치뜬 눈을 숨기지 않았다.
-해야지.
-미쳤어?
-우리 그냥 부모님들끼리 정한 결혼 하려고 나온 거 아니잖아. 상대가 누구든, 이 결혼 필요해서 나온 거 아니야?
상대가 누구든, 이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그럴 이유도, 자격도 없단 걸 알면서도 그랬다. 쥰멵이 입을 다물자 밍섟은 마른 세수를 했다.
-어쨌든 해. 어차피 보여주기식이라는 거 알잖아.
나만 이렇게 소란스러운 건가. 너한테는 그냥 회사를 위한 일련의 과정일뿐 별거 아닌 건가. 쥰멵은 한참을 침묵하다 홧김에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어차피 해야 할 거 피차 감정 생길 일 없을테니 편하겠네.
마음에도 없는 말이 서로를 할퀴었다. 어떻게든 서로를 상처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혀끝에, 시선에 칼이 스몄다.
쥰멵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아물지 못한만큼 너도 다쳐있길 바랐다. 내가 아픈만큼 너도 아프길, 너도 슬프길.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그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너도 조금쯤은 힘들었다고, 조금은 아팠다고.
...말해줄 수 있잖아.
다치고 싶지 않아 날을 세울수록 서로를 찔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 한번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복도, 식장도, 혼수도.
우습게도 비서를 시키거나 카탈로그로 확인해서 정해도 될 것을 두 사람은 부득불 나란히 앉아 함께 정했다.
쥰멵은 부러 밍섟의 취향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깔끔하고 모던한 것을 선호하는 밍섟에 반대되게, 색감이 화려하고 다양한 무늬가 들어간 가구를 고르고 벽지를 정했다. 솔직히 화를 내거나, 못해도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밍섟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그게 더 짜증이 나더라. 네가 뭘 하든, 집을 어떻게 꾸미든 상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너와 내가 함께 살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쥰멵은 그를 신경쓰는 건 오직 저 하나인 것 같아서 속상했다.
밍섟을 만난 뒤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왔다갔다 했다.
사실 밍섟은 쥰멵이 일부러 그런다는 거 알았는데, 고르는 것마다 부득불 제 취향과 반대되게 고르는 것 자체가 자신이 뭘 좋아했고 뭘 싫어했는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진 탓에 아무 말도 못했다.
아무튼 그렇게 벽지며 소파, 장식장 심지어는 티비랑 세탁기까지 쥰멵이 고른 걸로 탁탁 골랐는데 대망의 침대를 고르자니 뭔가 좀 그렇더라.
쥰멵은 지금껏 밍섟이 말할 새도 없이 와다다 쏘아붙이듯 하던 걸 멈추고 입을 꼭 다물었다.
가구나 벽지같은 건 화풀이하듯 골랐는데 두 사람이 같이 쓸 침실의 침대를 고른다고 생각하니까 막 고를 수가 없었다.
쥰멵은 제가 망설이는 이유를 지금껏 제맘대로 고른 게 미안해서 그런거라고 합리화하면서 이거 하나쯤은 밍섟이 좋아하는 색으로 할까 고민했다.
근데 쥰멵이 망설이는 사이에 밍섟이 하나를 콕 찍었다.
-이걸로.
새하얗고 푹신한 침대는 누가봐도 쥰멵의 취향이었다. 쥰멵은 뭐라 말하려던 걸 잊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주 예전에, 우리가 그냥 우리만으로 좋았던 어느 날에. 함께 살게 될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먼 얘기지만 당연한 미래라고 생각해서 여기저기 사진을 찾아보며 함께 취향을 나눴었다.
-나는 침실은 무조건 깔끔하게 흰색이 좋아!
-이런 그레이 톤 예쁘지 않아?
-파란색도 예쁘다.
어깨를 부딪혀가며, 눈을 맞춰가며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든 순간 우리는 우리인 게 당연했고 나는 네가 너는 내가 당연했다.
영원히 그럴 줄만 알았다.
밍섟이 고른 것을 보고도 쥰면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밍섟은 잠시 고민했다. 잘못 골랐나. 원래 이런 침대 사고 싶다고 했었는데.
지나온 세월만큼의 너를 모르니 무의식중에 너를 위한다고 한 선택마저 확신을 잃었다. 밍섟은 잠시 망설였다.
-이제 안 좋아해?
그 조심스런 질문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침대 얘기인 걸 아는데, 단순한 취향 얘기라는 걸 아는데도 그랬다. 그냥 그 생략된 주어가, 그냥 네 눈이. 네 목소리가.
더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쥰멵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니.
그 후론 더이상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이나 멀뚱히 앉아 서로의 기척만 살피다가 비서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주에 피팅하는 게 팀장 회의랑 겹치는데 어떻게 할까요?
-...걔는 어떡한대?
-김 이사님이요? 글쎄요. 비서 통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아냐, 됐어. 회의는... 회의는 그냥 서면 보고 받는다고 해. 피팅 내가 갈게.
그 날도 네가 오진 않을까 싶었다. 이러는 게 우스운 꼴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너도 계속 나오니까. 바쁠 거 뻔한 일정 소화하면서도 너도 오니까.
꼭 약속 같았다. 나를 보러 오는 것 같았다.
만나도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지만 그래도 함께 앉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니까.
마지막 남은 예복 피팅을 위해 샵에 갔을 때, 평소라면 저보다 먼저 와서 무료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고 있어야 할 밍섟이 보이지 않았다.
쥰멵은 내딛던 걸음을 절로 멈췄다.
어쩌면 조금 늦는 걸수도, 일이 바빠 오지 않는 걸수도 있는데 불쑥 서운한 감정이 치민 스스로가 놀라웠다.
이러지 말아야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피팅을 했다. 그러나 가봉된 셔츠와 자켓을 서너차례 입어보고 몸을 움직여보며 피팅을 모두 끝냈을 때도 밍섟은 오지 않았다.
안 오려나. 늦는 건가. 쥰멵은 망설이다 디자이너를 불렀다.
-어깨가 조금 불편한데요.
오래 전부터 제 옷을 만들었던 디자이너였다. 이미 피팅까지 끝낸 옷이 불편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디자이너는 말없이 옷을 다시 확인했다.
이렇게 하니까 소매가 좀,
커프스 단추 이거 말고 없나?
셔츠는 넥라인이 이것보다 좀 더 깔끔한 게-
나중에 가선 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사님, 다음 일정 얼마 안 남았습니다.
결국 예정보다 두시간을 더 보낸 뒤에야 난감한 얼굴을 한 비서가 조심스레 쥰멵을 불렀다. 쥰멵은 그 말에 뺨을 한 대 맞은 것처럼 멍청한 얼굴을 해보였다.
왜 네가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을까.
두시간 넘게 아등바등 시간을 끌려고 애쓴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쥰멵은 차게 가라앉은 눈으로 제게 자켓을 건네는 디자이너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그냥 처음 그대로 해줘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얼굴엔 짜증이나 동요가 없었다. 애초에 옷에 대해 트집을 잡다시피 했던 제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안다는 듯.
그걸 보자 괜히 서러워졌다. 이 사람도 아는 걸 너는 왜 모를까.
네가 안 오면 기다릴 거 왜 모를까.
어쩌면 알 생각이 없었을지도.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확신이 없는 마음은 몇번이고 스스로를 흔들었다. 너는 내가 보고 싶지 않나봐.
그동안은 그냥, 그냥 예의였나봐.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해도 굳은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쥰멵은 가라앉은 얼굴로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인사조차 나오지 않아 어색한 목례로 대신하자 비서가 다가섰다.
그런데, 발걸음을 돌리기 무섭게 도어벨이 요란하게 울리며 문이 열렸다.
쥰멵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땀에 흠뻑 젖어 고르지 못한 숨을 연신 몰아쉬며, 저만큼이나 초조하고 저만큼이나 굳은 얼굴로.
-내가 너무 늦었나?
밍섟이 서있었다.
쥰멵은 한참이나 말없이 주변을 살피는 밍섟을 바라봤다. 대답이 없자 가쁜 숨을 몰아쉬던 밍섟이 고개를 돌려 저를 마주했다. 쥰멵은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두가 쥰멵과 밍섟의 눈치를 살폈지만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쥰멵의 뒤를 따르던 비서는 눈치껏 뒤로 물러섰고 피팅을 끝마친 옷을 잘 정리해 넣던 직원들은 서둘러 옷을 다시 꺼내왔다.
말없이 다시 피팅을 진행하면서 쥰멵은 연신 밍섟의 얼굴을 훔쳐봤다. 직원이 가져다 준 찬물을 단번에 들이킨 밍섟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숨을 고르다가 예복을 입었다.
쥰멵은 불현듯 제 마음 속에 무언가가 싹트는 것을 느꼈다.
-야.
-
-너 금요일에 약속 있냐?
놀란 눈으로 저를 보는 밍섟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없어.
-그럼 밥이나 먹자.
-
-뭐, 이제 결혼할 건데 같이 살게 되면 알아야 할 것도 있고 맞춰야 할 것도 있으니까.
한참이나 쥰멵의 얼굴을 보던 밍섟이 그래, 라고 말하는 것에 괜히 들떴다. 쥰멵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애쓰며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사방이 거울이라 밍섟에게 다 보인다는 건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
고대하던 금요일, 밍섟은 이미 잡혀있던 빡빡한 일정을 뒤로 미뤘다. 비서는 난감한 얼굴을 했지만 불평을 하진 않았다.
근래 들어 가장 밝은 얼굴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밍섟을 보니 제가 나서서 일정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단둘이 가지는 식사 자리는 헤어진 뒤 처음이라 긴장했다. 지난 번 상견례 자리는 식사는커녕 시켜놓은 커피 한잔 손에 대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만 해도 이 결혼이 그저 끔찍하고 괴로웠는데.
쥰멵은 짧은 새 변모한 제 감정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미리 예약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두사람의 분위기는 자연스레 부드러워졌다. 그 때 이야기는 부러 뒤로 한 채 회사 이야기나 동창들 이야기를 조금 하다보니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쉬워 텅 빈 커피잔을 쥐고 마시는 시늉을 하던 밍섟은 조심스레 쥰멵을 불렀다.
-괜찮으면 이 위에 바에서 한잔할래?
쥰멵은 수락했다. 밍섟은 긴장으로 땀이 묻어나는 손바닥을 허벅지께에 몇번이고 문질렀다.
예상보다 바에서의 분위기 또한 좋았다.
저마다의 취향에 맞는 칵테일이나 보드카를 두고 두 사람은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쩌면 이대로 괜찮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감정이나 이야기는 모두 묻어두고, 그냥 지금의 너와 나로 충분하지 않을까.
쥰멵이나 저나 거짓말은 잘 못 하는 성격이었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숨기지 못하는데 굳이 이렇게 눈치를 볼 필요가 있을까.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였다. 함께 나누는 대화에 지난 시간동안 쌓인 수많은 감정들을 배제하니 막힘이 있을 리 없었다.
두사람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바를 나왔다.
-데려다줄까?
밤눈이 어두운 쥰멵을 기억했다. 밍섟은 혹시 제 마음이 비쳐질까 부러 더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그래줄래?
돌아온 대답이 긍정일거라곤 미처 기대하지 않았지만.
5분전까지만 해도 이야기거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이상하게 말수가 줄었다. 두사람은 연신 유리에 비치는 서로를 훔쳐보며 눈치를 살폈다. 줄어드는 계기판 속 숫자를 보자 어쩐지 초조함이 늘어갔다.
결국 지하 1층에 도착하기 무섭게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를 벗어나려던 쥰멵은 아직 설익은 구두가 걸려 비틀거렸고 얼결에 그런 쥰멵을 부축한 밍섟과 애매한 자세가 되고 말았다.
눈은 이미 마주쳤고, 오랫동안 서로를 알아온만큼 지금의 분위기가 무엇의 전초전인지 모를 리 없으니 두 사람 다 마른 침만 꿀꺽이며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때마침 열렸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쥰멵은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밍섟을 밀어냈다.
얼마전만 해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언제 이런 분위기까지 흘러왔나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뒤로 한걸음 물러나기 무섭게 앞으로 당겨졌다. 쥰멵은 엇,하는 사이 부딪히는 코끝에 당황해 숨을 꾹 참았다.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우리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닿아오는 입술을 막을 수가 없었다.
-
키스를 했다고 모든 것이 달라지진 않았다. 겨우 키스 한번에 모든 것을 내보이고 손을 잡을만큼 두 사람은 어리지 않았으니까.
서로에게 아직 호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미련인지, 그리움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당장 오늘로 닥친 결혼식을 앞에 두고도 그랬다. 쥰멵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봤다.
이대로 정말 결혼해도 괜찮을까.
조금 두렵고 조금 설레였다.
-선배.
-
-오랜만이죠?
그런데 낯선 목소리가 저를 불렀다. 거울에 비치는 얼굴에 잠시 멈칫했던 쥰멵은 등을 돌려 그녀를 마주했다. 아마 절대로 잊지 못할 얼굴. 치졸하고 서투른 제 사랑의 흉터가 서있었다.
-여긴 어떻게.
-예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밍섟 선배한테 어울리는 사람이니까요. 계속 연락했거든요.
목구멍이 막힌 기분이었다. 계속, 연락을 했다고. 그 말에 속이 들끓었다.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고, 당장이라도-
-근데 선배가 J기업 자제님이실줄은 몰랐네요. 밍섟 선배가 정략 결혼 하기 싫다고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하면서 손 벌리려고 했던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김밍섟이?
-뭐. 정략 결혼이야 이 바닥에선 흔한 일이라고 해도 반드시 다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안 하겠다고 아버님한테 찾아가고 동분서주하길래 걱정 많이 했는데.
-
-선배랑 하기 싫어서 그랬나봐.
-...야.
-어쨌든 결혼하게 됐으니까 말해주는 거에요. 상대는 싫어하는데 혼자 호감이라도 갖게 됐다간 곤란하잖아요.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를 위해서 하게 된 단기 파트너십이나 마찬가지인데 혹시 선배가 옛날 일이라도 떠올려서 착각할까봐.
-
-그럼 너무 창피하잖아.
손이 덜덜 떨려왔다.
쥰멵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맘처럼 되진 않았다. 결국 쥰멵의 동창들이 들이닥쳐 인사를 하는 것에 겨우 분위기가 풀린 쥰멵은 인사도 없이 대기실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선배랑 하기 싫어서 그랬나봐
그 짧은 말이 뭐라고.
적의에 가득찬 그녀의 말이 반쯤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동요한 자신이 싫었다. 쥰멵은 저를 축하해주는 이들에게 적당히 대거리를 한 뒤 슬쩍 자리를 피했다.
저와 비슷한 또래들끼리 모여 테니스를 치거나 승마를 하는 자리가 많은 걸 알면서도 그런 자리만 쏙쏙 골라 피해온 덕에 마땅한 이가 별로 없었다. 꺼내든 핸드폰 속 전화번호 목록을 몇번이나 살피던 쥰멵은 겨우 익숙한 이름 하나를 찾아 눌렀다.
긴 연결음에 초조해진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잘근거리자 몇번이고 이어지던 연결음이 간신히 끊겼다.
-이ㅈ규.
-야. 나 지금 가고 있다? 안 늦어, 안 늦어!
-나 물어볼 게 있는데.
-응?
-김밍섟이, 원래 이 결혼 안 하려고 한 거 맞아?
-어?
-맞아?
-...뭐, 그거 어디서 들었냐? 그거 다 옛날 일이지. 걔가 뭐 진짜 결혼 안 하고 싶었으면 안 하지 않았겠냐? 걔 성격에. 너 만나고 맘에 드니까 결혼하겠다고 한 거겠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의 목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쥰멵은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상대가 누구든, 이 결혼 필요해서 나온 거 아니야?
어쨌든 해. 어차피 보여주기식이라는 거 알잖아.
서로가 상대라는 걸 처음 알았던 날. 기가 막히다는 듯 불평하던 제게 냉정히 쏘아붙이던 그 목소리가 왜 지금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뭐야, 대체?
며칠 전의 키스와 냉정하던 목소리가 한데 섞여 어지럽게 돌았다.
뭔데, 대체.
김밍섟. 너 뭔데. 무슨 생각인데.
뭐가 진심이야.
뭐가 진짜 너야?
너 정말,
...우리 정말 그냥 가짜야?
-
동시 입장을 하기로 해서 두 사람 다 하객을 맞지는 않았다. 대기실에 혼자 멀뚱히 앉아있던 밍섟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대기실을 같이 쓸 걸 그랬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턱시도 입은 김쥰멵 예쁘던데.
식을 진행하는 동안은 제대로 볼 수 없을테니 이때 많이 봐둬야 하는 걸 생각이 짧았다. 밍섟은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겠다. 아무래도 그냥 철판 좀 깔고 쥰멵이랑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밍섟은 쥰면에게 가기 전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정돈했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은 욕심에 확인하는 거울 속 자신의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며칠 전의 키스로 닿은 것이 단순히 입술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그날 부딪혔던 게, 그냥 서로의 시선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섣불리 부풀어오른 마음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어? 선배?
그런데 몸을 돌리기 무섭게 열린 문 틈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밍섟은 굳은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문 앞에 서있는 것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밍섟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떼 그를 불렀다.
-김 호.
-와, 대박. 저 3일 전에 프랑스에서 돌아와서 몰랐어요! 쥰멵이형 결혼 상대가 선배였구나!
-여긴 어쩐 일이야?
-네? 어, 음. 결혼 축하해주러 왔죠?
-쥰멵이랑 계속 연락하고 지낸 거야?
-...그렇죠?
술에 취한 호를 끌어안고 서있던 쥰멵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모습을 보던 내가 어디까지 무너졌는지. 어디까지 떨어졌는지도. 밍섟은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마른 세수를 했다.
-선배? 왜 그러세요?
-아냐. 쥰멵이한테 인사하러 온 거 아니었어? 나도 쥰멵이한테 가는데, 같이 가자.
-어, 아니에요. 저 그러다 엄마한테 걸리면 또 너는 결혼을 언제 하니, 애인은 있니 하면서 쥐잡듯 잡혀요. 그냥 저 못 본척해주세요.
-...엄마?
밍섟은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뜬금없이 어머니라니. 설마 쥰멵의 어머니와도 돈독한 사이인 건가.
-네, 저희 엄마요. 쥰멵이형 결혼한다고 난리났거든요. 사촌 형이 결혼하는데 너는 뭘 하고 있냐고, 전화로 잔소리를 두시간을 들었어요. 그러니까 꼭 비밀로 해주세요, 네? 저 쥰멵이형한테 인사만 하고 바로 갈 거거든요.
사촌, 형.
그 익숙한 이름에 절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밍섟은 입가를 가렸다. 엉킬대로 엉켜 절대로 풀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매듭이 허무하게 풀려나갔다. 끄트머리를 밟고 있어 풀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때는 아무리 애를 쓰고 당겨봐도 풀리지 않던 것이 뒤로 물러나 당기는 것을 멈추자 알아서 느슨해졌다.
허무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밍섟은 그만 가보겠다는 호에게 대강 인사를 해준 뒤 걸음을 서둘렀다.
-신랑분! 이제 입장 준비해주세요!
그러나 쥰멵에게 그 부푼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플래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밍섟은 아쉬움에 잠시 머뭇거리다 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식이 끝나고 나면 시간이 아주 많을테니까. 함께 얘기를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이런 오해를 했었다고, 그때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고. 이런 제 고해를 쥰멵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희망적이라 여겼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너를 끌어안은 나를 너는 밀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입을 맞췄고, 떨어지는 입술이 아쉬워 한참이나 서로를 놓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함께 선 버진 로드 앞에서.
수많은 말과 마음을 눌러 담은 손은 차갑게 뿌리쳐졌다.
-잡지마.
-쥰면아.
-보여주기식 결혼에 이 정도까지 친밀할 필요는 없잖아.
-뭐?
-어차피 프로젝트만 잘 마무리되면 끝날 거래잖아. 상대가 누구든, 그냥 한번 하고 마는.
-...쥰멵아, 그때 그 말은,
-입장하실게요!!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라 믿었던 그날이, 그 밤이 아득해졌다.
-
식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밍섟은 기계적으로 인사를 하고 예물을 나누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억울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여직 낫지 않은 제 상처가 가여워서, 여전히 네게 흔들리는 내 마음이 화가 나서 부린 짜증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했는데도 너는 여전히 예뻐서. 구겨지는 미간도, 곧은 눈썹도. 나를 보는 네 맑은 눈빛조차도 나는 너무 좋아서. 그게 너무 싫어서.
잘라내지 못한 사랑이 아직까지 그 끈질긴 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가시를 세운 것이었다.
어떻게든 망치기 위해 왔던 상견례 자리에 네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추잡하고 음습한 상상으로 너를 붙잡으려 했는지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감추고 싶었으니까.
그 말이 날카로웠다는 건 알았다. 그 말을 듣고 네 표정이 변했다는 것도, 꾹 깨문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는 것도.
그래, 그럼. 어차피 해야 할 거 피차 감정 생길 일 없을테니 편하겠네.
그러나 걱정스레 바라보던 예쁜 입술 새로 새어나오던 그 날카로운 말에, 밍섟은 사과를 할 기회를 놓쳤다. 저 또한 제 상처를 가려야 해서 정신이 없었다. 찔린 마음을 감추고, 피가 나는 사랑을 숨겨야 했다. 너에게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그 말 사실 진심이 아니었다고. 그냥 겁이 나서, 내가 한심해서 부린 심술이었다고.
한번 놓친 기회는 제 손을 떠나 흘러내려갔고 그 후에는 미묘한 분위기에 사과는커녕 그 날 일을 꺼내지도 못했다. 마음에 걸리면서도 어영부영 흘려보내고만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쥰멵아,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
-상견례 자리에서 내가 했던 말. 심했다는 거 알아. 미안해. 그거 진심 아니었어. 내가 너무 못나서 그랬어. 내가 나한테 화가 나서 너한테 심술 부린 거야.
-
-정말이야. 나는,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네 말 중에 틀린 거 없잖아.
-쥰멵아.
-우리 정략 결혼이야. 알잖아. 이번 프로젝트 얼마나 중요한지. 너나 나나 회사 사활이 걸린 문제 아니야?
-...그렇지. 근데,
-아. 알아. 너 이 결혼 하기 싫어한 거. 나랑 결혼하기 싫어서 여기저기 발품 팔고 다녔다며.
-...뭐?
-나도 하필 내가 너랑 결혼할 줄은 몰랐지. 미안하다, 김밍섟. 근데 어쩌냐. 이미 결혼했는데. 피차 서로 불편하고 껄끄러운 건 똑같으니까 적당히 지내다 이혼 도장 찍자.
-쥰멵아. 그렇게 말하지마. 물론 처음엔 결혼하기 싫었던 거 맞는데 너인 거 알고나선 아니었어. 나 조금 기뻤어.
-그래? 왜? 나랑 결혼하면 깔끔하게 이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김쥰멵!
-구질구질하게 굴지마. 너랑 나 그때 끝난 거 잊었어?
-
-이미 끝난 거 끌고 오지마. 우리 그날 분명히 끝났어. 이건 그냥 어쩌다, 평탄한 인생에서 한번쯤 겪는 굴곡으로 찾아온 거야. 좀 지긋지긋하겠지만 좀만 참아. 금방 지나갈테니까.
차갑게 내뱉어진 말보다 제게서 멀어지는 쥰멵의 눈빛이 더 아팠다. 저를 떠난 시선은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밍섟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바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발을 딛고 선 제 세상이, 저의 우주가 그대로 조각나는 기분.
저를 스쳐지나려는 쥰멵의 팔을 붙잡은 밍섟은 감은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고개를 저었다.
-놔.
-쥰면아.
-
-제발...
간절한 마음은 연약했다. 사랑이 모두 그렇듯 유약하기 짝이 없는 그것은 끝내 그를 붙잡는 것조차 제대로 하질 못했다. 가볍게 털어내는 손짓만으로도 힘없이 뿌리쳐지고 마는 것은 결국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영원히 너를 이길 수 없기에.
단순하게 저를 거부하는 몸짓만으로도 감히 닿을 수가 없었다. 밍섟은 허벅지께에 늘어진 빈 손을 말아쥐었다.
멀어지는 쥰멵은 걸음걸이마저 예뻤다.
저를 밀어내고, 제게 상처입히는 순간조차도 쥰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꼭 쥰멵의 마음과 같이 굳게 닫히는 문소리에 그제야 겨우 주저앉은 밍섟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울었다.
이 나이 먹고 울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너무 미웠다.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보다, 네게 상처입는 연약한 내 마음이 너무너무 미웠다.
-
쿵, 소리가 난 것이 문 닫히는 소리였는지 제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였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문에 등을 기댄 채 한참을 서있던 쥰멵은 그대로 주르륵 무너져내렸다.
저라고 제가 쏟아낸 그 칼날들이 얼마나 못되고 독한 것이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저조차 그 독기에 따끔할 정도였는데 그걸 정통으로 받아낸 밍섟은 어땠을까. 쥰멵은 죄책감에 제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 정도로 심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냥 룸메이트처럼, 이웃사촌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자고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를 붙잡는 밍섟이 뜻밖에 사과를 하고 그날이 진심이었던 것처럼 말을 하니 혼란스러워졌다. 애써 다잡은 마음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 같아서. 너무 당황스럽고 너무 겁이 나서.
쥰멵은 왈칵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눈가를 훔쳤다.
결혼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 밍섟이 미웠다. 우리가 정략 결혼이라는 걸, 회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결혼이었다는 걸 수긍하는 밍섟이 싫었다.
-최악이야. 김쥰멵 진짜, 진짜 최악이야.
그러면서 나를 붙잡으려는 네가, 또 의뭉스레 굴면서 나를 흔들지는 않을까 화가 나서. 속절없이 흔들릴 내가 겁이 나서.
무릎을 끌어안은 쥰멵은 팔 안 가득 얼굴을 묻은 채 울었다.
상대는 싫어하는데 혼자 호감이라도 갖게 됐다간 곤란하잖아요
뭔가를 알고있다는 듯,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에 초라해진 스스로를 감추지 못했다. 그날의 너를 믿기엔 우리는 너무 많은 날을 불신으로 지새웠고 그 밤의 너를 의지하기엔 나는 너무 많은 밤을 너없이 보내야 했기에.
-제발...
밍섟아. 나야말로 제발.
나는 너무 무서워.
나는 여전히 그날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 밤은, 그 입맞춤은 나를 구해주기엔 너무 찰나였다.
쥰멵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암흑 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이기적이게도 이 순간 네가 문을 두드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모두가 그 속사정을 아는 정략 결혼이었지만 대외적인 시선이 있으니 부부 행세는 해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신혼 여행까지는 차마 못 갈 것 같아서 쥰멵은 애써 잡았던 일정을 취소하고자 넌지시 비서를 불렀다.
-저기, 우리 그 신혼 여행 잡은 거 있잖아.
-아아, 네. 맞아요. 그거 내일이죠?
-응. 근데 그거,
-내일 기자들도 다 오기로 했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파파라치컷처럼 찍기로 했으니까 너무 신경쓰실 거 없어요.
-...아, 그래?
-네. 기사 나가기 전에 초고는 미리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사진이랑 같이요.
다이어리를 확인하는 비서에게 차마 일정을 취소하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기자들에게 연락까지 다 된 것이라면 애꿎은 뒷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쥰멵은 결국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날 그렇게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온 뒤 밍섟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혹시 새벽이면 방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 부러 벽을 향해 돌아누운 채 뜬 눈으로 밤을 내쫓았건만, 새벽이 찾아오고 끝내는 햇살이 제 등을 찌를 때까지 밍섟은 방문을 열지 않았다. 겨우 용기를 내어 나온 거실에도 밍섟의 기척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쥰멵은 제가 밤을 지새울 동안 밍섟은 이 집을 나갔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를 부를 수도, 왜 나갔냐 따질 수도 없어서 연락을 하지도 못했다. 내일 나와 신혼 여행을 떠날 건지, 공항에는 나타날 건지.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섣불리 그의 이름을 누를 수 없는 것은 제가 너무 못난 치라 그랬다.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쥰멵은 회사 업무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몇번이나 실수를 했다. 다행히 다들 신혼 여행 생각에 설레기라도 하냐며 농담을 던지는 분위기라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웃는 얼굴과 달리 속내는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결국 업무가 대강 마무리되기 무섭게 허겁지겁 달려온 쥰멵은 혹시 밍섟이 왔을까 싶어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현관 앞에 자리한 신발은 제 것 하나였다. 쥰멵은 덩그러니 놓인 제 신발을 내려다보다가 구두를 벗었다. 집안 어디에도 밍섟이 들렀다 간 흔적은 없었다.
정말 그대로, 그걸로 끝이었던 건가.
제가 자초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서러웠다. 쥰멵은 애꿎은 입술을 꾹꾹 말아물며 옷장을 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러다 내일 공항에 밍섟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혼자 비행기에 올라야 하면.
한없이 너를 기다리다가 네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면.
초라한 뒷모습이 기자들의 입방아에 오를 것보다 그 기다림을 네가 알게 될 것이 싫었다.
쥰멵은 흘러넘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세살배기 애도 이렇게 많이 울진 않을텐데.
설움이 뒤섞인 눈물이 캐리어에 한 방울 한 방울 담겼다.
제발 그곳에서 내가 이걸 풀어보는 일이 없길.
언제 이런 것이 담겼냐는 듯 다시 캐리어를 열었을 때는 모두 사라져있기를.
넘칠 듯한 캐리어를 꾹꾹 눌러 잠그며 쥰멵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닦아냈다.
-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밍섟은 오히려 집앞에서 저를 기다렸다.
당연히 비서가 서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캐리어를 끌고 나왔던 쥰멵은 조수석 문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있는 밍섟을 보고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 했다.
제 손에서 캐리어를 끌어 트렁크에 직접 실은 밍섟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쥰멵은 옆에 앉은 밍섟을 몇번이나 흘깃거리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두 사람 모두 사과나 애정의 말을 아끼는 성격은 아니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해서 사과를 하는 것에 자존심을 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쥰멵은 몇번이나 사과의 말을 꺼내려다 망설였다. 뒤늦은 자존심은 아니었다. 다만 제 사과가 밍섟에게 어떤 의미로 닿을지 알 수 없어 망설이게 되었다.
결국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쥰멵은 나이가 들수록 어리석어지는 스스로가 답답해 인상을 찌푸렸다.
소탈한 재벌가의 젊은 부부를 컨셉으로 잡은 두 사람은 직접 운전을 하고 공항까지 왔다. 주차를 하고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는 순간까지 모두 카메라에 담길테니 정신을 차려야 했다.
쥰멵은 앞서 내린 밍섟의 뒤를 따라서 캐리어를 꺼냈다.
-출장 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무거워.
-어?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왔냐고.
운전을 하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던 밍섟이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비록 어딘가에 있을 카메라를 신경쓴 행동이겠지만 못내 기뻤다.
쥰멵은 묵직한 캐리어의 손잡이를 당기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나 원래 그러잖아.
1박2일 강릉 여행에 제 몸만한 캐리어를 끌고갔던 쥰멵이다. 대체 뭘 그렇게 넣은 거냐며 타박했어도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에 빠진 캐리어를 빼앗아 끌던 밍섟이 떠오른 쥰멵은 저도 모르게 풀죽은 얼굴을 했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이 너무 잘 되어있어서 캐리어는 덜컹거리지 않았다. 이걸 핑계로 손이라도 스치고 싶은데.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에 걸린 캐리어에 낑낑대는 내게 타박하는 네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어쩜 이 길바닥조차 저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쥰멵이 바닥을 노려보는 사이, 밍섟은 몇번이라도 뻗으려던 손을 겨우 걷었다. 고르지 못한 바닥을 핑계로 쥰멵의 캐리어를 뺏어 끈 게 한두번이 아니다. 쥰멵은 그저 울퉁불퉁한 바닥 탓이라 여겼지만 눈을 반짝이며 사방을 가리키고 종알거리는 모습이 어여뻐 편히 구경하라고 부러 빼앗아 든 게 더 많았다. 밍섟은 당장이라도 제가 끌겠다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마치 저를 난도질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 대화 이후, 차마 쥰멵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도망치듯 회사로 향했던 밍섟은 딱딱한 가죽 소파에 몸을 뉘인 채 한참을 생각했다.
쥰멵과 제 사이를 회복할만한 방법을.
솔직히 말하면 조금 겁이 나긴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밍섟은 아무 무늬 없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짐했다.
연약한 마음을 다잡아보자고.
네가 쏟아내는 말까지 모조리 다 끌어안고 품을 수 있도록 더 크게 팔을 벌려보자고.
오늘은 그 다짐의 시작이었다. 밍섟은 앞서 걷는 쥰멵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몇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뭐야...?
마치 셔터를 누르듯 제 눈에 꾹꾹 담아내며 쥰멵의 뒤를 따르던 밍섟은 그러나, 문이 열리자마자 당황스러운 티를 내는 쥰멵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서둘러 그 곁으로 다가간 밍섟은 저 또한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분명히 비서에게 전해듣기로는 미리 컨택한 언론사 두어곳에서 파파라치 연출샷을 찍고 기사를 내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공항에는 수십명의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서있었다. 저희가 등장하기 무섭게 터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당황한 밍섟은 들고있던 여권으로 쥰멵의 얼굴을 가렸다.
-괜찮아?
-어어.
-일단 저쪽으로 가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비서를 동행하지 않은 탓에 따라오는 기자들을 막을만한 방법도 없었다. 밍섟은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렬한 불빛에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치 포토라인처럼 제각기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던 이들의 대열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움직이는 두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카메라에 담기 위해 쫓아오는 이들이 위협하듯 주위로 몰려들자 불안감을 느낀 밍섟은 쥰멵의 어깨를 제쪽으로 당겨 안았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밀치고 밀쳐지는 사람들 틈에서 신경을 곤두세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잠시 돌아본 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맞잡은 손이 있는 힘껏 서로를 당겼다.
-
-죄송합니다. 이번 결혼 발표 기사가 나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쏠렸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설마 부르지도 않은 기자들이 몰릴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작은 sns였다고 했다. 누군가 올린 밍섟과 쥰멵의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그들의 배경, 지위 등이 연신 화두에 올랐고 이를 귀신같이 눈치챈 기자들이 특종을 잡고자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평화까진 아니더라도 제법 무난한 여행을 꿈꿨던 밍섟은 눌러쓴 모자를 고쳐쓰며 침음성을 흘렸다. 다행히 사태를 알게 된 공항 측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며 두 사람에게 안전요원을 붙여준 덕에 무탈하게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쥰멵은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하는 밍섟의 얼굴을 흘깃대며 여권을 괴롭혔다. 아까 카메라를 흉기처럼 휘두르던 몇몇이들의 눈먼 셔터질에 밍섟이 어깨를 부딪혔다. 딱히 아프거나 다친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 딱딱한 렌즈에 얻어맞은 어깨가 멀쩡할리는 없었다.
-미안. 통화가 길었지? 지난 번 결혼 발표 기사가 좀 화제가 됐나봐. 이 비서도 미처 예상 못했다고 난리다. 그래도 문제되는 일은 없게 잘 처리한다니까 너무 마음 안 써도 되겠어.
-아프지.
-어?
-어깨. 아까 맞았잖아.
-아. 아냐. 괜찮아.
-미안해.
-
-사실 만나자마자 했어야 하는데, 사과 못 했어. 저번에 내가 했던 말 다 홧김에 한 말이니까 담아두지 말아줘. 잊을 수 있다면 잊어주면 고맙겠는데, 그건 불가능할테니까 그냥 두고두고 남겨두지만 말아줘.
악착같이 상처를 내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아픈만큼 너도 아프라고, 내 흉터만큼 너도 끔찍하라고 기를 쓰고 날을 세우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깨닫게 됐다. 네가 상처입으면 내가 아프다는 걸. 네가 아픈만큼 내가 끔찍해진다는 걸.
쥰멵은 여전히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제가 쏟아냈던 그 끔찍한 말을 밍섟이 짊어지게 하고싶진 않았다.
-쥰멵아.
-
-그렇게 미안하면, 우리 여행지에서는 진짜 부부할래?
-뭐?
-비록 정략 결혼으로 우리가 부부가 됐지만 나는 솔직히 오래전에 꿈꿔왔던 거거든.
-너랑 비행기 타고, 신혼 여행 가서 알콩달콩 재밌게 노는 거.
-
-그러니까 거기 가선 진짜 부부하자.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사과 대신 그걸로 떼워.
-김밍섟.
-그렇게 해줘.
환하게 웃는 얼굴인데도 전혀 반갑지 않았다. 쥰멵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머뭇대다 고개를 끄덕였다.
-난 비행기 타는 것도 꿈꿨으니까 비행기에서도 부부다.
-뭐?
-가자, 여보.
낯간지러운 호칭으로 저를 부르며 잡아끄는 손길이 싫지 않았다. 쥰멵은 제 손을 단단히 맞잡은 밍섟의 손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두려웠지만 밍섟의 말처럼 신혼 여행 동안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달콤한 꿈을 꾼다는 기분으로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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